두 번째 소요편지: 소요서가 첫 해를 마무리하며

두 번째 소요편지

안녕하세요. 첫 번째 소요편지에서 개업인사를 드린 후 어느새 계절이 달라졌네요. 그동안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셨나요?

철학서점 소요서가가 문을 연지 이제 다섯 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한 해 마무리를 앞두고 지난 반 년 동안 여러분께서 주로 어떤 책을 서점에서 찾아 주셨는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소요서가의 또다른 축인 도서출판 소요서가와 아카데미소요가 2022년에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서점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철학서점 소요서가에는 약 3000여 종의 책들이 준비되어 있는데요. 그 중 약 1500여 종의 책들이 개업 후 여러분을 찾아 갔습니다. 가장 많이 팔린 책들을 꼽아보자면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베르그손의 “웃음”, 그리고 올 한 해 화제였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있습니다. 더불어 “개소리에 대하여”와 “몸짓들” 또한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책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데요. 서점에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많은 분들이 책의 ‘물성’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이 무엇을 담고 있느냐 만큼 내가 어떻게 책을 담을 수 있을지 또한 철학책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인 셈인데요. 소요서가에서 개념의 ‘물질적 풍경’을 경험하시길 기대하는 저희로서는 무척 반가운 발견이었습니다. 

한편, 말씀드린 책들은 어떤 지점에서 만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개소리에 대하여”는 거짓말과 개소리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거짓말은 참을 은폐하려 한다는 점에서 참을 주장하는 진리와 짝을 이루지만, 개소리는 진리값 자체에 무관심한 채 말하는 사람만 돋보이게 한다.’ 저자인 해리 프랭크퍼트 교수는 이런 개소리가 빈번하게 된 이유로, 사물의 실재성을 파악할 수 없다는 회의주의의 만연을 꼽습니다. 사람들이 사태의 객관성 앞에서 망설이게 되다 보니, 자기 스스로에 대한 진정성의 강박으로 내몰리게 되었다는 지적입니다.

어쩌면 회의주의는 오늘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종 정보의 범람이 오히려 판단을 주저하게 만드는 세태는 진리의 상대성에 대한 두려움을 반증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두려움이 우리를 주저 앉히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용감하게도 소요서가로 향하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탑승해 주셨으니까요. 

아마 그 안에서 누군가는 “티마이오스”가 들려준 데미우르고스의 ‘이데아’를 궁금해하고, 또 누군가는 세계-내-존재인 자신의 “몸짓들”에서 ‘생각의 자유’를 이끌어내려 하고, 다른 누군가는 자동기계처럼 원하는 것만 읊조리는 “개소리”의 희극성을 “웃음”으로 교정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은밀한 능동성이, 만연한 회의주의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저희가 소요서가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짐작해 봅니다.

더불어 이 점 또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판매된 1500여 종의 책들 중 약 800여 종의 책들은 단 한 권씩만 판매되었습니다. 사실 저희는 이 점에 더 주목하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찾는 책에서 짐작해 볼 수 있는 의미만큼이나, 우리 각자의 취향이 800여권의 철학책으로 흩어질 정도로 다양하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모두 다른 곳에서 온 여러분께서 이처럼 소요서가에 저마다의 흔적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요서가는 내년에도 많은 별들이 모였다가 뿌려지는 공간으로 계속 남아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도서출판 소요서와 아카데미소요의 내년 계획을 알려드립니다. 

도서출판 소요서가는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갑니다. 현재 준비 중인 책들이 빠르면 여름부터는 나오기 시작할 텐데요. 여러차례 말씀드린 베르그손의 “콜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 뿐만 아니라 절판되었던 케네스 클락의 “예술과 문명” 또한 새롭게 출판할 예정입니다. 준비 중인 출판 리스트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카데미소요에서는 내년 2월부터 8주 동안 ‘피노키오의 철학’ 저자이신 양운덕 선생님을 모시고 철학입문자 강의인 ‘질문의 탄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서양철학사’ 강의는 내년 7월까지 계속됩니다. 8월에는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그리스 신화와 비극에 대한 강연을 준비 중이고, 이후에는 서양철학사II 강의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이 강의에 대해서도 추후 더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철학서점 소요서가 산하에서 진행될 ‘오십부터 페미니즘’ 독서모임도 소개해드립니다. 이모임에서는 내년 2월부터 7월까지 모두 여섯 권의 도서를 함께 읽을 예정인데, 독서모임과 특강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특강 강사로는 이정순, 정희진, 김주희, 권김헌영, 김은주 선생님 등이 함께 하실 예정이니 독서모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업 이래 소요서가에 보내주신 사랑과 격려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여러분 모두 삶의 어느 순간에 있을지언정 용기를 잃지 않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단히 감사합니다.